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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월요일

주인의식

주인의식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운명론자가 많다. 자기가 무슨 미래예언이나 점을 보는 자는 오히려 운명론자가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 그것은 그 자는 이미 운명을 훔쳐보고 뭔가 변경을 요구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를 가진 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신에 의해 자기운명을 바꾸려는 자이다. 여기서 아무런 종교도 없고 점도 안보고 아무런 사회변화도 추구하지 않는 의사가 진짜 완벽한 운명론자이다. 즉 인류는 지금 의사의 운명론에 완전하게 세뇌되어 국가와 사회는 고사하고 자기자신조차 어떤 운명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것은 이미 자기를 인간이 아니라 물질로 본 것이며 그는 물질이 아닌 의지가 있는 인간이기에 자기가 할 수 있는데도 저 태양을 탓하면서 모두 저 태양이 하는 일이라면서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면서 자포자기한다. 그런데 이런 운명론에서 왕이 된 자는 이런 운명론자를 고치는 의사뿐이다. 그런데 정말 운명이 존재할까? 이 운명의 구성요소는 자연과 인간이다. 국가와 사회는 모두 이 인간에 속한다. 그런데 자연은 바꾸기 어렵다. 내가 저 태양을 멈출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그런데 이 행복의 90%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다. 돌맹이에 걸려 넘어진 상처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 낫고 그것으로 자기를 불행하다고 돌맹이를 원망하는 자는 없지만 자기집의 가족이나 친구가 준 상처나는 말한마디나 인간이 인간에게 준 상처는 증오의 감정을 낳아 치유되지 않는 상처가 되고 이런 인간끼리의 상처는 어느 국가와 사회와 가정에서도 존재하며 이 불행은 자기 인생에서 평생을 따라붙는 악령이 되기도 하고 인간의 집단인 민족과 민족의 불화는 인류역사에 대전쟁을 일어킬 정도의 무시무시한 불행을 발생시키고 이때 전세계의 각개인은 인생이 파탄나는 큰 불행을 겪는다. 그 예가 히틀러 한명에 의해 발발된 2차세계대전을 비롯한 인류역사의 수많은 전쟁이었다. 즉 인간의 운명은 부분적으로는 운명처럼 보여도 전체적으로는 결국 인간이 결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리는 전체에 타당할 때 진리이지 부분만 타당하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래서 운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의 운명은 인간이 결정한다고 해야 한다. 다만 이것을 할 엄두를 못내는 그 마음 때문에 이때까지 그저 이 운명이란 것에 복종한 것이다. 그러나 이 운명의 복종은 알고보면 사탄에 대한 복종이며 이 복종은 의사에 대한 복종이다. 또 자연에 대해서도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이 자연조차 인간이 변형하고 있다. 즉 인간이 지금 의사에게 복종하다 자연을 다 파괴하여 자기의 무덤을 파고 있다. 그러면 결국 이 자연도 저 태양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 지라도 지금 인간의 생사에 관련된 자연계의 중요한 요소는 결국 인간이 결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 인간의 운명은 결국 전체인류의 공동운명의 부분이며 전체인류의 공동운명이 바뀌면 개인의 운명도 바뀐다. 그러면 전체운명의 극소수인 1명이 72억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가? 여기에 가능하다고 말하는 자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 이 질문에 불가능을 떠올리는 자는 오해 때문이다. 첫째 그는 가능하다고 하는 자가 72억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고 자기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나쁜 마음을 그 사람도 인간이기에 먹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인간은 72억종류나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즉 인간의 마음도 72억종류나 되고 남의 마음이 자기의 마음과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것을 그도 인정해야 한다. 둘째 그는 타인에 대해 책임의식이 없는 자이다. 즉 그는 오히려 자기가 72억의 주인으로 행세하려는 자이다. 즉 그는 72억을 자기가 보는 대상 즉 자기 인생의 놀이의 도구나 즐기는 용도로 사용한다. 즉 그는 자기의 인생의 구성요소로 이 72억을 사용한다. 이 주인의 개념은 물건의 주인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의식에서 물건개념을 떠올리는 자는 의사에게 세뇌된 자이다. 내가 말하는 주인이란 지구의 주인이다. 주인이란 원래 물건에 대한 개념이다. 지구는 물건이다. 그런데 여기에 주인이 없다. 정녕 지구가 자기의 소유물이라면 누가 이토록 지구가 황폐화되도록 내버려두며 누가 이토록 지구자연에서 뛰노는 자기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이토록 학대하는가? 지구는 나 혼자 소유할려고 해도 소유할 수가 없다. 그 크기와 광대함으로 인해 내가 이런 물건을 소유한다면 나는 그만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1명이 혼자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주인의식을 가진 자는 주인의식을 갖지 못한 기타의 72억을 설득하는 자이다. 이것은 매우 쉽다. 그래서 72억이 이 진리를 알면 모두 주인이 되고 다만 관리를 위해 여기에 인류의 뇌가 필요하다. 내가 그 뇌가 되겠다는 것이다. 뇌는 인류의 주인이 아니라 오히려 인류의 보호자이다. 의심하는 자의 의심을 나는 바라보는 것도 부담이 되기에 그들이 원하는대로 나는 그저 인류의 보호자만 되고 기타 그것으로 어떤 이권과 명예를 취하지 않겠다. 그래도 의심하는 자를 위해 나는 먼저 내가 뇌가 되면 이 뇌를 문서화하고 그저 문서대로만 진행하게 한다. 이 문서대로 진행하면 나만 빼고 모두 자신이 원한 그 주인 즉 왕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인류가 왕이 되어 스스로 적극적으로 활약하도록 이렇게 그냥 내 집에서 글을 쓰고 전세계인이 보게 인터넷에 발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왜 굳이 그렇게 하냐고 나의 이 글을 아직 제대로 이해못한 사람은 또 뭔가 의심스럽고 불안해서 또 질문할 것이다. 그것은 나는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이며 내가 이렇게 하는 것도 이 세상이 천국이 되면 나도 같이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72억이 같이 천국에 가고 72억이 같이 지옥에 사는 둘의 선택에서 같이 천국에 가기로 결정한 사람이다. 당신도 이제 그렇게 해라. 그뿐이다. 진리란 우리가 천국에 못가는 이유는 단한명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때문이고 천국이란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여기는 정말 지옥이다. 여기가 천국이라고 말하는 자는 비교를 통해 자기만 천국에 산다고 말만 그렇게 하지 사실 그는 혼자있으면 더 지옥이다. 그러므로 착한 마음을 가진 자는 의심을 풀고 나를 도울 것이다. 그래서 착한 사람은 가능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의심많은 자는 너는 그럼 왜 니가 하느님이라고 했느냐고 질문할 것이다. 하느님은 왕이 아니라 왕을 섬기는 자이고 원래부터 하느님이다. 그럼 여기서 나도 하느님이 되고 싶다고 하는 자가 나올 것이다. 그럼 하느님이 되라. 하느님이란 모두를 하느님이 되게 하는 자이니 이제부터 전인류를 하느님이 되게 하라. 그럼 나도 너처럼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알아야 할 것은 여기에 뇌는 하나이며 유일한 방법이 필요하다. 내가 뇌가 된 이유란 다름이 아니라 아무도 하지 않기에 내가 처음으로 했다는 그 최초의 자 외에 아무 의미도 없다. 그래서 니가 그런 생각을 했다면 너는 어쩔 수 없이 두 번째 하느님이지만 이 두 번째나 72번째나 다 평등하다. 그것은 내가 그렇게 나를 포함해 모두에게 평등을 명령한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이토록 질문하는 인정머리도 없고, 99가지 덕을 보고 1가지 불만스런 점으로 하느님을 의심하고 배신하는 유대같은 니가 만일 하느님이 되면 너하나를 위해 인류는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너의 마음 속에 들어있는 의사에게 세뇌된 사탄의 마음을 막고자 첫번째하느님이 되었다. 유다는 예수가 하느님으로 불리는 것이 싫어 그만 인류전체가 다 지옥에 가도 예수가 하느님되는 것을 막은 자이다. 그리고 저도 지옥에 가는 자이다. 즉 이 유다는 예수에게 개인적 원한이 맺힌 예수에게 붙은 사탄이다. 그가 현재 의사로 분열되어 세계통일을 반대하려고 전세계각국으로 나왔다. 즉 인류는 이 유다한명 때문에 지금 지옥에 산다. 그런데 이 유다의 이런 발상 즉 예수가 하느님이 되는 것이 못마땅한 이 발상은 곧 저기 태양이 있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발상과 동일하다. 그런데 그의 이런 못마땅한 감정은 의사의 유물론적 세계관과 배치되는 감정으로 그의 본질과 모순된 생각이다. 그래서 이 생각은 노예의 마귀들린 불평이다. 이 유다의 정체는 원래 스스로 자기가 자청한 하느님의 노예이다. 그래서 이 유다는 원래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왕좌를 물려받는 권리가 있는 왕자인 예수를 음해한 대역죄인이다. 이 유다가 이런 불평을 가지게 된 근본원인은 예수 즉 하느님의 왕자가 천민에게 왔기 때문이다. 유다는 예수가 친하게 대우해주자 그만 예수를 자기와 같은 천민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그렇게 질투했던 것이다. 즉 유다의 눈에 예수는 자기와 같은 자가 왕이 된 즉 급격하게 행운으로 신분상승한 자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천상의 임금님의 외아들이자 천국을 이어받는 황태자였다. 유다는 이렇게 왕자와 친했다는 이유로 자기의 신분을 망각하고 그만 왕과 노예의 객관적인 신분조차 평등한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예수의 12제자는 예수가 왜 일부러 서민처럼 행위했는지를 이해못하고 가장 이해못한 자가 이 유다이다. 다만 이 유다는 그렇다고 자기가 왕좌에 앉은 것도 아니고 인류를 지옥에 살게 방치하고 결국 동네에서 병원의 사무실의 왕좌에 앉아 오는 손님을 물건으로 만들어 그들에게만 왕노릇을 하고 있다. 즉 지금의 의사는 유다의 영혼의 파편이다. 이 파편은 아무리 분열되었어도 유다 한명이므로 72억인류는 이 유다를 체포하여 다시 예수의 비극이 되풀이 되어 전인류가 지옥에 떨어지지 말게 하라. 이번에 기회를 놓치면 끝이다. 다만 여기서 알려줄 것은 예수가 왜 천민에게 왔는냐이다. 또 왜 예수는 유다의 손에 살해당해주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이제 인류의 누구도 자기주위에 천민같아보이는 자를 함부로 자기가 안다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예수는 이런 유다의 성격 즉 인간을 형식화하여 점수로 나누고 함부로 판단하여 자기의 아래로 보고 물건화하는 의사의 성격을 고쳐주고 싶은 거지옷을 입고 못생긴 모습으로 나타나 아무도 몰라본 하느님이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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