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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2일 수요일

채식주의자의 적

채식주의자의 적 현재 전세계에 채식주의자가 증가추세이지만 그래도 이들이 언제나 벽에 부딪히는 이유는 그들은 불을 밖에서만 끄려고 할 뿐 이 불이 나는 화재의 발원지를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인류의 빈축을 사기 때문이다. 즉 채식주의자는 적을 잘못 짚어 적이 아닌 인류를 적으로 삼아 인류에게 저항을 받고 있다. 채식주의자는 왜 채식주의자가 인간으로 대우하는 동물의 시체가 정작 먹어보면 맛이 좋은 지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인간의 시체를 먹으면 맛이 짜고 먹기가 역겹다. 또한 호랑이를 비롯한 육식동물의 고기는 질겨서 아예 먹지를 못한다. 개고기도 삶지 않고 구워먹으면 질겨서 못먹는다. 오로지 풀을 먹고 자란 채식동물의 고기와 물고기만이 먹기에 알맞을 뿐이다. 즉 채식동물은 풀이라는 태양에너지를 취하는 자이며 육식동물이란 초식동물이라는 태양에너지를 취하는 자였고 그들은 원래 도덕이 없는 그저 태양에너지의 순환의 매개자일 뿐으로 여기에는 어떤 도덕도 매개되지 않으며 그저 물질의 변화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에게 인간과 동일한 생활과 감각이 존재한다는 점이며 그래서 인간에게는 언제나 동물을 살해할 때 도덕이 없는 동물은 느끼지 못하는 죄의식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런 죄의식의 깊은 본질에는 인간이란 이성을 가진 존재이며 이 이성은 도덕을 낳고 이 도덕은 인간에게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보장한다. 즉 우리는 동물과는 전혀 새로운 어떤 존재가 될 수 있고 그 존재가 곧 신이다. 그런데 인간의 상급차원의 존재성을 모르게 하고 그저 우리가 마치 동물과 동일한 냥 생각하게 되었던 이유는 어떤 강력한 권위자의 말 때문이다. 즉 인간이 동물을 따라한 이유는 도덕을 배제한 권위자의 교시가 존재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맛과 도덕의 거래는 인간의 동물화를 초래하여 덕보다 손해가 더 크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런 것을 교시한 자는 사기꾼이다. 채식주의자 중에 오징어조차 그 자체의 생활과 고통의 감각이 있다는 것으로 생명이라는 존재에게 그들의 삶을 파괴하지 않고 고통을 주기 싫다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 도덕이라고 믿는 자와 오징어조차 그에게 영혼이 있기에 이 오징어살해는 살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징어가 죽어서도 원귀(寃鬼)가 된다는 것을 믿는 자에게 호소하노니 먹는 사람을 탓하지 말고 더 이상 채식주의에 열을 올리지도 말고 이런 생명을 잡을 수 있는 잔인한 인간 즉 장사꾼과 소비자가 아닌 도살자와 체포자와 사냥꾼을 비난하지도 말고 먼저 오로지 단한사람, 이런 인간이 잔인하게 될 수 밖에 없도록 유물론적 세계관을 유포한 유물론의 하느님이자 하느님의 역적이며 인류의 적이자 범죄자인 의사만 체포하고 격렬하게 그 인간성의 잔혹함을 비난하라. 원래부터 영혼은 만질 수 없는 신성한 존재이며 육체의 고통은 영혼의 고통으로 만질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이 영혼을 육체적 차원으로 끌어내린 자가 사탄인 의사이며 신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인간의 삶을 동물의 삶으로 끌어내려 자기가 주인이 된 자가 최초에 인체를 해부하여 인간의 신비를 파괴한 영계의 악마인 의사다. 그러므로 이제 전세계의 모든 채식주의자는 하느님의 이름아래 하나되어 오로지 의사만을 탄핵(彈劾)하라. 이 채식주의라는 이름도 오로지 저 의사의 눈치를 보고 어정쩡하게 지은 이름이며 의사만 제거하면 이 채식주의는 채식주의가 아니라 의사라는 사탄 때문에 인간으로 전락한 신인(神人)의 기초 예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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