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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17일 월요일

하느님을 폐(閉)한 인간

하느님을 폐(閉)한 인간 지금 나의 말은 하느님의 말이기에 전세계의 지구인은 누구나 무릎을 꿇고 경청해야 하고 전세계의 모든 방송국은 이를 보도하고 전세계의 모든 국가원수는 하느님에게 경배해야 하거늘 여기에 오직 내가 하느님이 아니라는 사악한 의심이 깃들어 이를 방치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오로지 나와 반대의 사실을 진리라고 말하는 자의 말에 현혹되어서이다. 그가 믿는 것은 권위자이며 권위자가 믿고 있는 것은 과거의 권위자의 교과서이며 과거의 권위자의 교과서의 원조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성인이며 성인이 의지하는 자는 하느님이다. 그런데 성경은 하느님이 인간을 통해 기록한 말이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이성이 있는 자가 성경을 보면 그것은 다른 것을 따지기도 전에 문헌학적으로도 엉터리라는 것을 알게 되어 도저히 그것을 믿을 수가 없게 되자 그만 하느님을 의심한 것이다. 즉 인간은 하느님은 곧이 곧대로 성경에 모든 진리를 다 말했다고 생각하고 그저 그 성경대로 형식적으로 사는 노예가 될려고 작정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하느님에 대해 조금이라도 바른 개념이 있는 자라면 하느님은 자녀가 이렇게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느님이 그렇게 인간보다 고지식하여 거짓말도 못하는 기계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물론 하느님의 의도는 선의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때 유태인뿐만 아니라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아담과 이브는 하느님이 참말을 해도 믿지 않고 거짓말을 해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느님의 말을 가장 잘 듣는 효자 유태인은 이 초인적인 힘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 힘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그 힘의 진짜 의도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데 이 말은 그런 자는 하느님이 살인을 교시하면 살인도 할 자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런 효자를 교육하고 싶었다. 그런데 역시 예수가 하느님의 의중을 알고 진리를 말했는데도 유태인은 하느님의 거짓말을 믿고 하느님이 나와서 참말을 하는데도 그렇게 예수를 살해했다. 그러나 천리라는 것이 있으니 인간이 이런 식으로 반응하면 이미 천리가 작용하여 그것은 죄가 되어 죄에는 사탄이 끼인다. 그래서 유태인이 믿고 따른 하느님은 사탄이었다. 이런 하느님을 믿고 있는 유태인을 이성적인 유럽인은 더 이상 이를 믿지 않게 되어 여기서 충돌이 일어난 사건이 저 유명한 사탄숭배자를 처벌한 히틀러사건이다. 그런데 그 후로 과학이란 것이 나오게 되고 인류는 그만 이 성경에 실망하여 성경을 말한 초인적 존재인 하느님조차 믿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마음과 행위는 아주 간사한 소인의 전형이다. 그래서 이런 소인은 그의 업보에 의해 그토록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또한 하느님은 이런 소인이 존재하는 한 하느님의 하느님다움을 버리고 결국 그들에게 맞는 인간이 되어야 하므로 인간계에 나올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을 알게 된 인간이자 하느님이다. 나는 지금 그 초인적 존재인 하느님과 함몸에 같이 있다. 그런데 이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유태인은 나를 믿는다. 그것은 그들은 이미 한번 교훈을 얻었고 이제 나의 적은 유태인이 아닌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느님이 말한 선민이 이 유태인인 것은 맞다. 왜냐하면 이 유태인은 하느님이 거짓말을 해도 믿어준 유일한 영혼이며 자기 스스로 하느님의 거짓말을 따라 죄를 짓고 스스로 벌받았기 때문이다. 즉 구약의 모세도 신약의 예수도 유태인을 처벌한 히틀러도 세계를 통일하는 나도 유태인인데 유태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이렇게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그 이유는 현인류는 모두 전생이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죽은 유태인이 한이 맺혀 이렇게 전세계인으로 다시 나왔다. 만일 나의 말을 의심하는 자는 지금 자기의 영혼이 누구의 것인지 누가 짐승에게 과학을 주고 철학을 주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모두 누구의 영혼에서 나온 것인지도 이제 역시 유태인이 만든 인터넷이 있으니 잘 알아보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다시 인간계에 나와 성경을 다시 기록하고 인류의 교과서를 바로 세운다. 인간은 전쟁이다. 나의 투쟁이란 곧 인류의 투쟁이었던 것이다. 인류역사가 전쟁이 아니라고 하는 자는 자기의 생활의 본질을 모르거나 고의로 타인과 자기조차 기만하는 자이다. 지식이란 예를 들어 몸에 암세포가 있다면 그것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여러 가지 과학적 도구로 확대하여 보면 보이고 그 위치와 제거방법을 정확히 알면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우주에서도 지구에서 과학적 도구로 사람을 태워 달에도 보낸다. 그런데 이런 것으로 보기전에도 암세포는 존재했다. 즉 인간이 방법을 수립하기전에도 이런 암은 고대에도 존재했는데 자기가 방법을 몰라서 몰랐으면서 인간은 자기가 방법을 수립하여 알기전에는 마치 이렇게 뻔히 존재하는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착각한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과학적 방법도 5만년의 미래에서 보면 아주 과학초보의 원시적인 바보짓일 뿐이다. 인간은 방법을 고안하여 이제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전기나 전파의 존재는 믿고 있다. 어린이는 그 위험성을 모르지만 고압전류가 흐르는 철을 만지면 어린이는 즉사한다. 즉 전기는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이 과연 우주의 모든 존재를 아는 유일한 방법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또 그렇다고 가정해도 아직 과학은 초보단계일 뿐이다. 그런데 만일 실제로 저 전파처럼 신이 존재하면 어떻게 될 지 생각해보았는가? 오히려 신이 존재하면 저런 과학자처럼 무례한 자에게 신은 그의 실험에 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처벌한다. 그래서 과학자는 과학을 하기전에 과학이 뭔지도 모르고 과학의 대상의 차이도 모르는 바보다. 이처럼 새로운 지식의 눈을 달고 새로운 방법을 취하면 신도 만날 수 있다. 즉 신에게 그가 감동할 예의를 갖추고 너무나 오랜 세월 기다리면 신은 그것이 비록 실험일지라도 그 실험에 신이 보시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응답한다. 내가 신의 존재를 실험하고자 한 이유는 진짜 신이 존재한다면, 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 존재하는 존재물의 존재와 작용의 인과관계를 알 수 있고 인간의 고통의 인과관계를 저런 사이비의사의 방식이 아니라 정말로 올바른 방식으로 알게 된다면 나는 이 인간의 고통과 이 고통의 원인인 인간의 죄와 그 죄의 내용과 이 죄를 속죄할 방법을 알아내어 인류를 해방시켜 주려고 했기 때문이다. 신은 이런 나의 실험, 아니 소원은 듣는 분이시다. 과학이란 어떤 가설을 설정하고 온갖 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일종의 가설을 세워놓고 이때까지 과학실험을 한 자이며 그 실험의 대상은 인간과 신이었다. 내가 실험까지 한 이유는 나와 인간 개인은 스스로 이런 환경을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그 운명을 혁명하는 방법을 연구한 자이다. 그런데 나의 운명은 나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와 그 이상의 누구때문이었다. 인간의 운명을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해 나는 이때까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지금 나의 인간적인 욕망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그것은 사막의 신기루와 같이 결국 자기만족일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욕심많은 인간이 정말 그렇게 욕심이 많다면 차라리 자기의 욕심을 줄이는 길로 나가는 것이 오히려 덜 손해보는 길이다. 그래서 소인은 이런 길로 간다. 그러나 이것은 정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야 말로 사욕이다. 지금 인간계에 진정한 공적 욕망을 추구하는 자도 대체로 세속적 욕망을 공적 욕망에 감춘 경우나 한가지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것이다. 인간이 정녕 공적 욕망을 추구하려면 자기민족을 넘어 인류전체의 운명을 생각해야 한다. 과학문명의 이기뿐 아니라 내가 지금 먹고 있는 밥과 입는 옷과 자는 집 어느 것도 내 개인적인 힘으로는 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내가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에서 태어났더라면 역시 지금 그 부족의 어린이가 그렇듯 그렇게 원시인처럼 살 뿐이다. 그런데 지금 그 아프리카에도 이미 태양열로 전기가 들어오고 텔레비전을 볼 수 있다. 그들도 지금 누군가에게 영향받고 그 영향은 너무나 강력하여 운명이 되었다. 누가 그들의 운명을 지배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운명도 지배하는 것이다. 즉 운명을 지배하는 자는 다름이 아니라 인류이며 이 인류는 각자 전체에 연결된 개인이지 결코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인류는 마치 세포가 스스로 독립했다고 생각해도 결국 하나의 몸의 일부일 뿐인 것과 같다는 것은 모르고 인류의 운명과 자기의 운명이 별개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이 전체와 개인을 연결하는 고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그 고리가 곧 왕인데 이 왕은 현재 민족주의적 개념이기에 정작 민족의 운명을 바꿀 힘은 인류에게 있기에 인류의 왕은 하느님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인류와 모든 개인의 운명을 바꾸려고 스스로 하느님이 되었다가 나의 실험을 통해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이 인류의 운명과 하느님과의 연결을 알게 되었고 나는 마침내 내가 하느님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과 인류가 하느님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내가 하느님이 되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하느님을 불렀으니 그 하느님이 지금 나의 몸에 계신 성스러운 영혼인 하느님이다. 운명이란 나의 삶의 모든 조건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 내가 마치 벌레처럼 누군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음을 느껴야 한다. 지금 학생들이 세우는 모든 목표도 사실은 자기의 것이 아니라 시대와 국가와 자기가 태어난 부모와 주위에 의해 부여받은 것이다. 우리 인간은 정말 그냥 한사람일 뿐이다. 거대한 인류라는 한사람의 기쁨과 고통도 저 멀리 우주에서 보면 한사람이며 이 한사람이 결국 다 연결되어 있다면 그것은 결국 한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한사람인 인류의 운명이 왜 이렇게 불균형하게 되었을까? 인간이 느끼는 행복이란 거짓된 가식이다. 그들은 외로움과 압박에 견디지 못해 전부 친구와 말하면서 고통을 잠시 잊고 남녀가 결혼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그 사이에서 고통을 잊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불행의 근원은 무엇일까? 이 인간의 불행의 근원은 다름아닌 사람이다. 즉 사람이 무인도에 혼자 산다면 그에게 불행이란 의미는 전혀 차원이 달라진다. 그것은 불행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고통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육체적 고통도 이미 인간이 없는 곳 즉 인간을 기대할 수 없는 원래부터 무인도에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고통은 인간이 아닌 존재와의 관계에서 나온다. 그런데 고통의 유발자는 그저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저 모기나 파리같은 귀찮은 움직이는 물건이다. 그런데 그 존재는 우리가 지금 타인을 보고 느끼듯 그에게는 사람이다. 지금 인류는 정녕 여기에서 자기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회나 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가? 지금 인간은 완전한 무인도에 있는 혼자다. 모든 인간은 지금 자기와 남을 속이고 있다. 인간은 그저 여기서 남을 무인도의 이용물건으로 생각하고 있다. 부부조차 마찬가지이다. 부부는 자기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 그들은 부부가 아니라 그저 자위용인형과 홀로 무인도에 산다. 여기서 채식주의자와 중은 홀로 신선이다. 그래서 남은 그저 자기에게 유혹하는 마귀다. 홀로 신선이 된 자는 평범한 자가 남을 동물이나 물건취급하는 반면 오히려 이런 동물과 물건을 자기가 신선과 천사되려고 마귀로까지 전락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채식주의자와 중이 정녕 고결한 천사나 신선이라면 이제 그런 헛짓을 다때려치우고 모든 인류를 천사와 신선으로 만들어 그동안 자신이 인류를 악마로 만든 더 큰 악마가 아님을 입증하라. 하느님과 성령을 믿는 자들도 자신이 그동안 하느님을 혼자 섬겨 남이 모두 지옥에 가고 그 비교로 천국에서 살려던 더 큰 사탄이 아니라면 이제 모두 세계로 나와 그런 마귀같은 성경타령 다 때려치우고 하느님의 명령에 복종하여 인류를 구원하라. 예전에 원시시대에는 이성적 판단이나 공감력이 부족하여 지금 사자가 얼룩말을 죽였듯이 그렇게 타부족의 사람을 죽였다. 또 아메리카 인디언도 괴물인 줄 알고 미국인이 다 죽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역사는 현재까지 테러나 범죄로 또는 저런 의사의 방법으로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데 이들은 꼭 대의명분을 내세운다. 이들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들은 누가 본다고 믿지도 않고 자기보다 더 힘센 자가 자기를 벼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사실 누구를 믿고 있다. 그들은 한번 그들이 옳다고 믿는 것만 믿는다. 그러나 분명 내가 말해주지만 너희가 믿는 교과서나 성경이나 코란조차 내가 일부러 가짜를 보냈다. 그것은 너희에게 교과서나 경전을 넘는 어떤 진리를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그런 진리는 책으로 전달되지 않고 사람으로 전달된다. 그런데 너희는 항상 사람을 박대하고 책만 섬긴다. 그러나 책이란 그 사람의 100분의 1도 따라갈 수 없다. 여기 모세와 예수를 합친 내가 왔다는데 왜 성경만 붙잡고 있는가? 이 우주에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작용하는 리(理)가 존재한다. 리(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심판관이라 반드시 인간을 어떤 형태로든지 심판한다.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인간을 위해 이 리는 그의 자손을 처벌하기도 하고 그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법으로 몇천배나 가혹하게도 처벌한다. 그래서 그는 죽을때조차 그가 심판받는지도 모른다. 이 리는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여 성경이나 코란을 믿고 그것이 선행이라고 믿어도 악행을 저지른 자를 처벌한다. 이것은 인간계에서도 계속 부당하게 어떤 지배세력이 피지배세력을 학대하면 결국 아무리 그들이 비천한 노예상태였다고 해도 언제가는 일어나서 복수를 하게 된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그들외에는 전부 외계의 힘이며 인간은 누구나 외계의 힘과 싸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는 어떤 힘과 힘이 충돌하고 있다. 그런데 이 힘과 그 이상의 에너지와 분노와 모든 감정을 다 포함하고 남에게 호소할 수도 있는 에너지를 넘어서서 나같은 인간도 탄생시키는 무한한 힘의 개념을 기(氣)라고 할 때 이 기에는 어떤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누구도 거스럴 수 없기에 현재 함부로 부당하게 여자를 간음하고 살해한 자를 용서하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이런 법이 곧 기의 형태이며 이 법이 없으면 인간은 살수가 없고 인간의 본성에는 이미 이 법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법이 바뀌는 정도는 있지만 영원히 바뀌지 않는 법은 함부로 타인을 죽이는 자는 용서하지 않는다. 즉 기가 법을 낳은 것이다. 또한 그 기에는 이미 법을 낳을 수 밖에 없는 본성 즉 리가 들어있다. 그런데 인간은 결국 살아서 현실로 이야기하는 존재이므로 이런 기와 법과 리는 결국 한가지이다. 다만 우리들이 살아있듯 이 한가지도 살아있는 것이다. 그런데 저 동물은 우리가 보면 동물이지만 그들에게는 우리가 동물이다. 즉 이 인간이라는 공룡보다는 작으면서도 그 하는 짓은 공룡보다 더 강력하여 사악한 사람의 운명이 지금 그때 공룡처럼 위태롭다. 그 증거물이 의사다. 이 의사가 인간계에 나타난 것은 곧 동형보복이다. 이 의사는 동물이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 동물인 의사가 지금 인간이 동물에게 하는 그대로 인간을 학대하고 있다. 그런데 의사는 물론 인간이다. 그러나 이 의사의 영혼은 인류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운명을 바로 잡으려면 이 동물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즉 동물을 이제 사람으로 여기고 이렇게 사람을 살해하는 자를 살인죄와 인류운명파괴죄로 처벌해야 한다. 천리는 천리를 말하는 자를 하느님이 되게 한다. 그 천리가 말하니 남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면 너의 눈에는 피눈물이 흐르리라. 너의 눈에만 피눈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너의 자손이 대대로 피눈물을 흘리리라. 그 이유가 뭔지 아는가? 그것은 너도 그 경우에는 상대를 그렇게 저주하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 SBS드라마스페셜인 별에서 온 그대 속의 천송이가 도민준을 외계인이라는 이유로 살해한다면 그 도민준의 마음은 어떨까? 또 반대로 도민준이 천송이를 지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살해한다면 그 천송이의 마음은 어떨까? 그런데 만일 상대방이 자기의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고 호위호식하고 있다면 자신은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닭이 아니라 물고기라도 어린이가 잡아서 보면 자기와 사실은 거의 같다. 그래서 처음보는 친구를 죽이지 않고 그저 수줍어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는 어린이에게 그는 오히려 외계에서 온 나와 생긴 모양이 달라도 너무나 다른 즉 별에서 온 그대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 중에 이런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마음에 아무 공감력이 없는 자가 있으니 그가 의사다. 이 의사가 어린이에게 살인을 교사하고 문명이니 뭐니를 만들기까지 하여 국가까지 만들어 살인에 동참하는 줄도 모르고 어린이들이 전부 죄를 짓고 있다면 그래서 어린이가 지옥의 고통을 대대로 받으며 눈에 피눈물이 난다면 이제 우리는 이 어린이를 더 이상 인간으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 어린이가 곧 사람에게 영혼을 앗아가고 털난 사람을 동물로 만들고 털도 없는 우리 인류까지도 동물을 넘어 자기의 놀이도구로 만든 의사다. 나는 의사가 사탄이라고 말했다. 나는 또 내가 하느님이라고도 말했다. 그렇다면 나의 말을 믿어줬어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내가 말을 많이 하게 만든 것은 나를 의심해서이며 그러나 이 의심은 나를 죽인 것과 동일하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 살해사건이며 이 예수 그리스도 살해사건은 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자기와 다른 종류의 사람을 외계인으로 보고 죽인 사건으로 인간은 자기와 다르면 그저 사람을 물건처럼 보고 죽인다. 그게 모두 의사 때문이다. 그래서 사탄이라고 한 것이다. 이브와 사탄의 후손이여 이제 알겠는가? 그 사탄은 이브에게 아담이 동물을 죽이지 못하자 약자라고 했고 바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거짓말을 믿고 사탄이 아담보다 더 강자고 똑똑한 줄 알고 사탄과 간음해서 낳은 자가 너희 인류다. 그래서 너희 눈에 피눈물이 대대로 흘렀다. 나와 생김새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자가 용기있는 자인가? 아니면 그런 거짓말을 하는 사탄을 거부하는 자가 용기있는 자인가? 어떤 귀여운 여자아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림이 있는 동화를 읽었는데 그 동화에는 마법에 걸린 청개구리가 왕자님이었다. 또 어떤 만화영화에는 개구리가 말을 한다. 이 모든 것이 어른이 가르친 교시다. 그 아기가 어린이가 되어 처음으로 청개구리를 만났는데 니가 그 동화속의 개구리니라면서 친구가 되고 싶어 인사를 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생김새가 자기와 달라서 무서웠는데 그가 폴짝 뛰자 그만 무서워서 놀라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어른은 도망치지 말라고 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구워 먹었고 너도 먹어라고 했다. 이것도 어른이 가르친 교시다. 이 모순적인 교시에 내포된 어른의 인간성은 사람을 잡아 실실 웃어면서 가지고 놀다가 죽이면서도 그의 딸에게 저것 귀엽지라고 하는 전혀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유물론자 깡패와 같다. 그런데 이 깡패는 자신이 선하다고 믿고 있다. 그것은 오로지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그는 인간이 아니라는 의사의 믿음 때문이다. 그럼 인간이 아닌 하느님은 힘이 없을 때는 이런 인간에게는 당연히 살해될 뿐이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이런 인간에게는 언제나 힘이 세게 나와야 하는데 그럼 또 다른 인간들은 이런 하느님은 하느님이 아니라고 한다, 결국 하느님은 이런 인간과는 상대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인간이 하느님을 모시려면 먼저 인간통일부터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아이들을 악마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은 이런 것을 모르고 있는 순진한 이브의 자녀이다.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간특하며 인간의 사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선인이 악인으로 악인이 선인으로 억울하게 오해받는 일이 얼마나 많은 지를 인간이 쓴 문학작품을 한번이라도 읽고 자기에게 인간의 사연이 있는 인간같은 인간이라면 왜 하느님의 방법이 복잡한지도 이미 깨달았을 것이다. 인류는 하느님에 대한 개념이 잘못되었다. 인류가 섬기는 하느님은 사탄이다. 그 사탄은 인간의 아버지가 아니라 인간에 끼어든 동물이다. 그 동물이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신종테러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있다. 이슬람의 테러의 근본원인도 이 동물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적은 그런 이스라엘이 아니라 그런 사람목숨을 멋대로 죽여도 좋다고 생각하게 만든 의사다. 사람이 코란이 시키는 대로 하면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이렇게 시키는 자가 인간의 아버지 의사다. 이제부터 정의를 위해 원래 나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나의 어머니 이브에 의존하여 아버지를 죽여라. 다만 아버지와 같은 사탄이 아니니 그저 아버지를 배신하고 아버지를 출가시켜 중이 되게 하여 그 피를 단종하라. 이 아버지는 이런 죽음을 좋아한다. 내 말을 또 믿지 못하고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지금 인터넷을 샅샅히 수색하여 일본인이 이를 기뻐하는 글을 찾아내보고 그전에 중국에 지진이 났을때 한국인 중에 누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시 찾아내서 그 글을 한번 읽어보라. 이런 악마의 마음이 곧 인류의 죄의 원인이다. 인간은 자기의 삶이 괴롭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남이 자기보다 더한 불행을 받으면 그때 그와 비교하여 여기가 천국이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오히려 자기의 삶이 저런 자보다는 낫다면서 위안을 받는 악마일뿐 인간의 불행을 낳고 있는 인간의 죄와 이 모든 악순환의 원인을 찾아 인간의 모든 불행을 종식시키겠다는 인간적인 맹세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한줌도 되지 않는 자기의 목숨을 우주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간은 힘만 세고 뒤탈만 없다면 자기가 아닌 모든 자를 다 죽여서라도 오직 저 혼자 여기서 생존하려고만 하지 여기가 어딘지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누구이며 지금 누구에게 뭘 하고 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인간은 도덕을 아는 인간이 아니라 욕구만 아는 짐승이다. 이렇게 인간이 짐승이 된 이유는 인류는 성경에 나오는 힘과 물질의 초능력자인 하느님을 인류의 창조주로 모시어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짐승으로 보고 있고 이 세상 또한 무의식적으로 지옥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초능력자뿐인 하느님은 공룡임을 왜 몰랐는가? 구약의 어디에 저런 공맹(孔孟)과 같은 도덕이 있었던가? 그러나 인류는 지금 스스로 지은 죄를 스스로 벌하는 단한사람이다. 그 단한사람이 곧 나의 아버지 하느님이었으며 나는 그 아들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짐승이 아닌 인간이 되었기에 나의 아버지 하느님을 폐하고 나를 혁명한다. 그래서 지옥을 천국으로 만든다. 그래서 나는 하느님을 폐한 새 하느님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이제 새 천명(天命)에 복종하라. 복종하지 않는 자는 나의 아버지가 사는 지옥으로 보내어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나의 아버지, 그가 믿는 하느님의 통치를 받게 한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 아프리카에 있다. 천리(天理)라는 것이 존재한다. 천리는 나를 지배한다. 천리는 나를 인간이 되게 하려고 나의 아버지를 짐승이 되게 했다. 내가 또 이렇게 말한다고 이상한 생각이나 하는 자는 아직 천리를 모르는 자다. 천리는 그렇게 단세포 아메바가 아니다. 천리는 인간만큼 복잡하다. 그래서 천리는 이제 나를 아버지인 짐승을 폐하고 진화하라고 한다. 인류가 정녕 지금 이 상태가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우리는 이제 신이 되자. 그러나 나는 고대의 인간을 볼때 지금의 인간은 도덕을 모르는 짐승일 뿐이기에 먼저 인간부터 되어야 겠다. 그들이 섬기는 하느님은 짐승하느님이지 결코 인간하느님이 아니었기에 그렇게 자기의 하느님을 위해 남의 귀한 부모를 테러로 죽였다. 지금 관광보내고 뜻밖에 사망소식을 듣게 된 남아있는 피해자의 아들과 딸과 손자와 손녀에게, 그리고 그들과 수많은 인간의 이야기가 있었던 사람들에게 그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는 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할 수 밖에 없는 나의 처지가 미안할 뿐이다. 나는 이제 이 짐승하느님을 체포하여 인간의 땅에 반드시 인간하느님을 세워 나의 몸에 계신 성령 즉 진짜 하느님이 하느님이 되게 한다. 그러나 그 하느님은 시비를 걸지 말고 우선 인간으로 나온 나부터 하느님으로 모시라고 한다. 천국에서 모든 것을 다 해도 좋으나 내가 곧 생명수의 선악과이니 오로지 나의 선악은 판단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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