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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3일 월요일

한국어의 존댓말

한국어의 존댓말 한국어의 존댓말에 불만을 가진 자는 물건이 된 자다. 물건은 구분이 없어도 인간은 남녀의 분별(分別)과 처음 만난 사람과 친한 친구의 친소(親疎)와 어른과 아이의 서열(序列)이 있다. 인간이 물건이 되면 하느님도 몰라보는 역적이 된다. 이런 존댓말체계를 악용하여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멋대로 반말을 하는 자는 무뢰한(無賴漢)이자 역적이다. 자기가 나이가 많다고 상대방은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주 친밀한 것처럼 무조건 반말을 해서는 안되며 언제나 경우를 따져야 한다. 존대말이 그렇다고 무조건 이런 문어체까지 존댓말로 하는 융통성없는 용법이나 체계가 아니다. 존댓말이란 단순하게 형식적으로 나이 많은 사람에게 나이 적은 사람이 존경어를 사용하고 나이 많은 사람이 무조건 반말을 하는 일방적인 군대식 명령체계가 아니라 인정(人情)의 표현이며 그 형식으로 예의를 가르치려는 하느님의 뜻이 담겨져 있다. 존대말에 불편을 느낀 자는 자신의 인격과 이 세계의 악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쉬운 길은 인간이 전부 물질이 되는 길로 나간 유물론자다. 하느님의 세계통일국가는 생각없는 물건같은 인간이 아니라 깊은 사고와 풍부한 감정과 섬세한 예의와 절차를 아는 인간과 파격적인 낭만과 유쾌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고급인격을 지향한다. 그래서 이런 존대말을 포기하고 모두 반말만 하는 것은 인류의 문화유산의 가장 좋은 도구를 버리고 조악한 도구로 인류를 통일하자는 하향평준화이다. 인류는 이제부터 인류의 문화유산 중에 가장 좋은 것으로 상향평준화한다. 인류의 인격수준이 높아지면 아무도 한국어의 존댓말에 불편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 유용함과 존댓말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된다. 한국어는 또한 반말이 있으므로 서로 친해지면 반말을 하면 되는 것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차이를 무시하고 일면적인 반말만 사용하는 언어는 오히려 부작용이 나타나고 인간을 더욱 기계나 물건처럼 되게 만든다. 언어는 인격을 연마하는 교육수단이자 정신문명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므로 이제 세계통일국가의 국어는 하느님이 이미 오래전에 특별하게 인류전체에게 널리 이익을 주기 위해 만든 한국어를 기본으로 한다. 한국어는 한글창제전에 하느님이 만든 언어이다. 그러므로 한국어는 현재 한국인만의 언어라 아니라 원래부터 세계어다. 다만 한국어에서 한자와 한글은 음양과 같은 짝이니 이제 한국의 젊은이들은 서로 친하다고 욕만 하여 자기의 인격과 남의 인격을 동시에 떨어뜨리지 말고 한자공부를 하고 중국어를 공부하라. 그러므로 한국어는 이제 한국어와 중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조선족이 모범사례인 새로운 언어체계인 미국어(美國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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